29만원씨가 전 국민적인 고교 야구의 인기를 이용하여 프로 야구를 우민화의 일환으로 활용하려 했듯, 현대 정씨 일가의 막내가 월드컵의 대성공을 발판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정도로 정치계의 실세 중 하나로 떠올랐듯.
스케일이 큰(?) 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이뤄지고 있고 보다 크기가 작은 세계에서는 팬들에 의해 자기자신과 스포츠와의 동일시 등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감정을 투영하다 못해 마치 자기자신이 응원팀과 일체화 되어버린 경지를 넘어서, 자기자신의 생각대로 팀이 운영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지에 달한달까. 자기와의 동일시 현상이 꼭 레크리에이션을 통한 생활 활력 충족 등의 긍정적인 길만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나쁠 때가 많죠.
- 아마야구 일부와 기아 타이거즈만으로 글이 600개에 육박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겁니다....
지금이야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잠잠하지만 기아에서 가장 욕을 먹는 선수는 홍세완이었습니다.
제가 얼마전 안치홍을 홍세완에 비유했는데(제가 비유하기 이전에 또다른 누군가가 홍세완을 연상했을 수도 있죠) 그게 어쩌다보니 퍼져나가 누군가는 안치홍더러 '겨우 홍세완 정도에 만족하면 안되네. 더 높이 나는 이종범을 보게나.'하는 정도의 글까지 남겼을 정도로 넷 상에는 그를 소스라치게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2003년 전무후무한 4번타자 100타점 유격수 홍대리로 인기의 정점을 찍은 이래, 그의 몸은 계속해서 삐걱거렸죠.
정말 홍세완보다 크고 작은 고통에 꾸준히 시달리며 부상도 자주 당하는 선수는 없어보일 지경으로... 운동하는 선수 중에 몸이 멀쩡한 선수는 별로 없다고는 하지만 홍세완이 심하기는 했어요. 지금도 슬라이딩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서 오랜 기간 재활군에 있지요.
그러나 그가 부상을 안고 거둔 성적에 비해서는 팬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게시판을 보면 그로 인해 이기는 경기는 몇 되지 않았고(사실 한 사람만으로 이기는 경기가 일년에 그리 많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는 기아 내야의 질서를 흐뜨리는 주범/어쩔 수 없이 안고 가는 계륵/찬스마다 병살을 날리는 홍병살로 적어도 하루에 한두번은 게시판을 수놓으며 성토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극도로 안 좋아서 2군까지 들락거렸던 2006년엔, 아마 홍세완은 앞으로도 100년은 너끈히 살아갈 정도로 욕을 많이 먹었지요. 당시엔 그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나 높아서 저도 크게 실망을 하긴 했었지만 몇몇 분들의 표현 수위는 실망했다를 넘어서서 인신공격이었죠. 애정이 있어서 까는 거다, 정도가 아니라...
그때 상처을 깊게 입은 홍세완 팬들도 상당해요.
잘하지 못하는 건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보기엔 속이 터지고 잘못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홍세완이 내야에 유격수로 있었던 건 그보다 나은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내야수를 닥치고 뽑아제낀 지금도 내야 불안에 시달리는데 당시 홍세완을 넘어서거나 다른 자리로 밀어낼만한 선수가 있었는지.
홍세완은 팀에 악영향을 끼친 적이, 팀내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없었다고 봐도 무방해요.
동료의 물건을 훔쳤거나, 동료들에게 돈을 빌려놓고 갚지 않거나, 팀내 하극상 등의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그런 종류의 행동이라면 팀 캐미스트리를 해치는 것으로 욕을 먹어도 마땅한 일이지요. 하지만 홍세완은 몸 관리를 잘은 못했을지는 몰라도 실력은 좋은 선수였고 팀 분위기에 해를 끼치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은 연일 시끄러웠지만 그런 것과 별로 인연이 없는 장년층의 팬들에게 홍세완의 인기는 상당했듯이.
어젯밤에 문득 지인들과 이야기하다가 예전 홍세완이 게시판에 연일 까였던 이야기가 나와서 안타까웠는데, 지는 경기지만 경기를 잘 보고 아무 생각없이 게시판 보다가 2군 선수들의 부족함에 대해 약간 과하다 싶은 발언만 봐도 소스라쳐 예전 생각들이 났네요.
홍세완이 그렇게나 미웠듯 많은 것이 모자라 보이는 2군의 젊은 선수들이 밉나요?
발 빠르다면서 찬스마다 병살을 치고 수비 실수를 연발하는 루키가 그렇게나 팀에 해악을 끼치는 것 같나요?
주루하다가 지난 경기에 이어 또 아웃당한 선수가, 자기 발 믿고 '까부는' 것 같나요? (그것도 두번 다 오심)
요즘 구인 광고를 보면 대개 '경력자 우대'라는 문구로 포장하고 초심자는 마다하고 경력자만 받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항상 경력자일 수가 없어요.
경력이 쌓이기까지는 누구나 다 초심자인데도, 무조건 경력자만 받아주는 사회 때문에 눈물 흘려본 사람도 많을테지요.
지금의 기아는 누군가가 초심자를 탈피해서 경력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거고요.
그런데 마치 며느리 시절의 혹독한 시집살이를 되물림하는 시어머니도 아니고, 사회에서 초심자 시절의 어려움을 겪어봤음직한 사람들이 응원팀의 어떤 선수가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한다거나 혹은 자기가 바라는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혹독하게 대해야 하나요?
응원 팀과 자기와의 동화가 지나치다못해, 마치 자기는 전지전능한 신인양 공격적 발언을 쏟아내며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게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요?
또한, 세상은 1%의 엘리트에 의해 주도될지도 모르지만 엘리트들만으로 조직이 구성되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매사에 완벽할 수 없고 모두가 매사에 성공할 수는 없어요. 하물며 야구는 10번 중 3번만 성공해도 최고가 될 수 있는 스포츠...
그러니 실수에 대한 비판은 비판 선에서 끝나고 조금만 덜 잔인해지면 안되겠습니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
* 이 2군 빙구들은, 몇몇에게 못한다고 지나치게 욕을 먹으니 눈에 안 차는 게 있어도 깔 수가 없고. -_-;
** 요즘 자꾸 불안해지는데, 홍대리가 돌아올 것이지만 행여나 못 돌아오면 그때는 욕하던 사람들에게 화내고 싶을 듯. -_ㅠ
ex. bgm. Astor Piazolla - Allegro Tangabile
Posted by 채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