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지 올라오면 펼쳐놓고 관전기나 써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올라오는 거 기다리며 열심히 블로그에 답글 달도록 기록지가 안 올라오네요. 확인해보니 중학부 기록지 자체가 없는지도.;;;
할 수 없이 간단한 인상이나 끄적여봅니다.

저는 원래 지역 예선을 가도 고등학교 경기 열리기 직전에 열리는 중학 야구는 안 보는데요.
(소체를 봤다는 걸 아는 순간, '넌 야구를 사랑하는구나~'하고 갈굴 지인이 많이 있으므로 강조!! 저 원래 야구 자체를 안 좋아합니다-_-)
오랜만에 야구를 보고 싶으시다는 지인의 말씀 한 마디에 넘어가 야구장 행을 결정했습니다.

중간에 잠시 밥 먹으러 나간 사이만 제외하면 아침부터 네 경기 완투를 했는데도, 생각보다 피곤함이 덜했던 건 중학야구는 7이닝 경기이기 때문이겠죠. 대략 두시간 정도면 한 경기가 후딱 끝나는 게 어지간히 찌질한 경기가 아니고서야 모두 재밌게 볼 수 있었습니다.

첫 경기인 경남중 : 전라중은 제가 지금까지 야구 봐온 중 가장 귀여운 런다운 플레이가 인상에 남네요. 경남중이 기본기가 잘 되어있는 학교라는 느낌을 받았는데(경남고 경기를 꽤 봤으니 기본 배경지식으로 깔고가야 하는 거죠-ㅅ- 같은 라인일테니까) 이 부분에서 저지른 실책 때문에 역전을 당해서 경기를 말렸답니다.
세번인가 네번인가 공이 빠졌는데, 안타를 치자 2루 주자가 홈으로 파고 들었는데 전진수비를 했던 외야수의 송구가 좋았습니다. 주자는 열심히 들어오고 있는데 공은 대략 두발짝 쯤 앞에서 포수의 미트에 빨려들어와 있었죠. 거의 우뚝 멈춰설 듯 했던 주자는 방향을 돌려 런다운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몰이를 당해 왔다갔다 하다가 홈 근처에서 태그를 당할 뻔 했는데 포수 미트에서 공이 빠져서 일단 생존. 공이 있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피해 도망갔더니 3루쪽에 있던 선수가 몰이하며 던져준 공을 빠뜨림. 3루주자는 홈으로 열심히 뛰어들어갔는데, 약간 정신줄 놓은 후속 주자(?)가 자기라도 많이 진루하기 위해 2루를 지나 3루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던 것. 정신차린 야수들이 공을 주워들어서 이 주자가 또다시 런다운에 걸렸습니다. 주자는 2루쪽으로 다급히 슬라이딩을 했는데 또 거기서 공을 빠뜨림. (2루 주자 생존)
어린 선수들이니까 한번 공 빠진 것에 계속 위축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원래 기본기 없는 선수들도 아니니 다음에 잘하면 되죠.

두번째 경기는 경상중 선수들이 그냥 고등학교 선수들이었습니다. -_- 무슨 덩치들이 그렇게 좋은지 대화 중에 흘깃흘깃 보면서도 놀랐습니다. 다만 경기는 비교적 루즈한 편이고 태양이 높게 뜨기에 이 경기 중간에 식사를 하러 나갔죠.

대략 점심 먹으러 가기 전까진 야구를 본 게 없어서 별로 쓸 건 없군요. - ㅅ-
둘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돌아와서 세번째 경기부터 약간 각을 잡고 관전했습니다. 원주중 : 마산동중.
...그런데 각 잡고 관전은 했지만 남은 건 원주중의 왼손잡이 유격수 하나로 귀결이 됩니다.;;;
원래 리틀야구에서는 왼손잡이라도 야구만 잘하면 투수도 하고, 유격수도 하고, 포수도 하고~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들었는데요. 대략 포지션 분화가 슬슬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점인 중학야구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름은 아마 염진우였던가.

확실히 왼손잡이가 유격수를 하는 데엔, 야구 센스가 좋다는 전제가 깔려있는거죠.
유격수 쪽으로 간 땅볼 처리를 하는 걸 보니 오른손에 낀 글러브로 잡고, 글러브를 벗고 왼손으로 든 후(?) 오른손으로 다시 송구를 하는 것 같더군요. 동작이 비교적 간결하고 능숙해서 땅볼 처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보였습니다. 중학 레벨에서는 아주 빠른 주자가 별로 없어서 그런 잔동작을 섞는 일이 가능한 것이긴 합니다만.
다만, 중월로 가는 타구를 타이밍 맞춰 정확하게 점프해서 손을 뻗었는데 왼손잡이라 글러브를 오른손에 끼고 있으니 잡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내어준 안타는 있었죠. 아마 정상적인 유격수였다면 호수비로 기록됐을 장면인데 아쉽죠.

이왕 왼손잡이 유격수를 본 김에 '설마 우타자?' 하고 변태같은 기대를 하며 웃었으나 ㅎㅎ 좌투좌타였습니다.
투수인데 타격 등도 괜찮아서 유격수로 억지로 들어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이 경기에서 투수로 나오지는 않았어요. 타격도 좋고, 땅볼 처리나 라인드라이브 타구 처리 등도 좋아서 1루수로 두기엔 아까운데 자기 방향 설정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산동중은 주전 포수로 출장한 박헌욱이 재밌었습니다.
포수인데 1번타자였습니다.-_- 다리는 상당히 길고 덩치가 좋아서 발 빠른 대형 포수감인가 생각해보았지만, 기대치를 높이자마자 공을 뒤로 빠뜨리는 플레이를 자행.;; 안타를 치고 나가서 주루사하는 등, 어리버리함이 하늘을 찔러서 웃고 있었는데요.
선발투수인 이성하가 흔들리자 6회 감독이 투수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오릅니다. 어리버리한 게 귀엽다고 웃고 있었던 포수 녀석이 장비를 벗더군요. 그리고 마운드를 내려간 이성하가 그 장비를 착용했습니다.;;; (배터리가 서로 장비를 바꿔서 착용할 수 있는 스킬을 갖고 있었던_-_) 떡대가 아쉽더니 정말 투수였던 것? 하고 웃고 있었는데 연습구로 던진 직구가 기대치보다 훨씬 빨라서 경악했습니다. -_-;;;; 원 포지션이 투수였던 듯, 등번호가 1번입니다. 아무나 못 쓰는 번호이니 마산동중 에이스겠죠. 왜 그걸 몰라봤는지. ㅎㅎ 중학 야구 수준에선 구속이 꽤 나오는 투수인 듯 해요. 원주중엔 배트 스피드가 따라가지 못하는 타자들이 많았어요.
대략 '발 빠른 대형 포수감 -> 인간미가 느껴지는 어리버리 -> 물밑 스카웃 경쟁이 느껴지는 좋은 투수'로 평가가 이동한 대단한 인재(;)입니다.

원주중이 4이닝 넘게 투수 이성하에게 노히트 노런으로 끌려가면서 힘들게 풀어갔던 경기. 마산동중이 3 : 1로 승리했습니다.


세번째 경기는 뻔한 타구에 공 빠뜨리고 허술한 맛도 느껴지는 어린 선수들 야구다운 귀여운 경기였다면,
네번째 경기인 경주중 : 무등중은 고등학교 야구에서도 보기 힘든 노련하고(;) 수준높은(;;) 야구였습니다. 무슨 중딩들이 기아야구보다 덜 허술하게 해. ㄷㄷㄷㄷ
사실 세번째 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면서 즐겁게 봤는데 이건 너무 완벽해서 보는 재미는 좀 덜했습니다만 원래 이런 경기가 후기가 남아 있어야겠지요.

원래 고교야구에서도 외야수들이 전진수비를 기본 위치로 잡곤 하니 큰 타구가 나오기 힘든 중학야구에서는 이루 말할 것도 없겠지만, 무등중이나 경주중이나 그 넓은 무등구장에서 상당히 정상 수비 위치를 잡았습니다. 이것부터 양 팀의 기량이 후덜덜이라는 느낌이 올 수밖에요. 단타는 줘도 2루타 이상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거죠.
보통은, 외야수들이 전진수비 위치를 잡으면 조금 큰 타구가 나오면 야수 두명이 그게 뜬 걸 한참 후에 판단하고 열심히 뒤로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펜스에 공이 부딪히면 그때 공을 주워들고 중계 플레이를 하는데요. 타구를 뒤늦게 판단하고 펜스까지 뛰어가는 것이니, 그동안 타자 주자는 어지간히 발이 느리지 않은 이상 3루까지 파고들 틈을 벌게 됩니다. 이게 아마야구에서 3루타가 나오는 메커니즘인데요.
양팀 외야수가 다 지독해요. 일단 정상 수비위치인데다가 큰 타구가 뜨면 그걸 상당히 빨리 파악해서 그 위치 근처에 가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ㄷㄷㄷ 보통은 3루타가 될지도 모를 타구를 2루타, 혹은 단타로까지 노련하게 처리를 하더군요. 양팀 중견수들은 짧은 타구나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에 앞으로 대시해서 잡아내는 것도 좋고 코너 외야수들은 까다로운 타구도 원바운드로 처리하고 상당한 어깨를 과시하며 프로급의 중계 플레이를 자랑하는 등.... 애들인데 너무 노련해서 인간미가 없었어요. -_-;;;;

지역팀이다보니 무등중 선수들 이름이 주로 기억이 나는데 좌익수 송준희, 우익수 김도경. 둘다 타구 판단 등의 수비가 ㄷㄷㄷㄷ하고 경주중 외야수들도 ㅎㄷㄷㄷ 합니다.
경주중 좌익수 정희웅이던가. 이 선수는 야구를 수십년 한 박재홍보다 더 나은 게-_-; 기아와의 경기에서 박재홍이 쓸데없이 깊숙한 외야 파울플라이를 잡아서 이재주에게 태그업을 할 시간을 벌어준 적이 있었죠. 이 경기에도 주자를 3루에 두고 비슷한 게 나왔는데 그걸 쫓아가다가 파울 라인 넘어가는 걸 보고 안 잡더군요. _-_ 타격은 좀 못 미쳤지만 그 정도 수비 기본기에 센스있는 선수가 타격에 눈 뜨는 건 계기만 마련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겠죠.

왠만한 팀에서는 수비는 포기하고 가기도 하는 외야수가 저러했으니 내야 수비는 뭐. -_- 양팀 다 키스톤이 ㅎㄷㄷㄷㄷ이에요.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키스톤 수비력은 무등중 > 경주중인데, 기량이 비슷하긴 한데 무등중이 좀더 견실한 느낌이 있어서 그쪽에 마음이 갑니다. (+ 광주지역 프리미엄) 사실 경주중 키스톤도 범위가 아주 넓고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줬죠.
두 학교 다 유격수의 기량도 훌륭한데, 2루수들의 레인지까지 넓으니 키스톤이 다 그물망 수비를 보일 수밖에요. 무등중 2루수 전은석은 그 레인지에다가 중계 플레이 하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았고. 경주중 2루수 송우규는 우중간으로 갈 듯한 안타성 타구에 승부에 쐐기를 박는 정확한 다이빙 캐치를 보여줬죠.

무등중에서 타자로 기억나는 선수는 1번으로 나온 송준희. 주자를 두고 타석에 들어서자 번트를 댈 것을 감안하고 3루수와 투수가 동시에 뛰어들어오는 낌새를 보입니다. 당시 번트 자세를 취한 채 공을 수비수 사이로 밀어버려서 내야 안타를 만들어내는 배트 컨트롤을 보여줬습니다. -_-; 그냥 타격 자체도 워낙 좋고요. 배트를 시원하게 돌려 라인드라이브로 뻗어나가는 타구를 보니 고등학교 가서도 잘할 것 같았어요. 요즘 이런 센스있는 우타 외야수가 은근히 귀해졌으니 나무 배트에 적응만 잘 한다면 3년쯤 후엔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를 일입니다.

경주중은 투수인 서예일이 4번 타자로 중심을 잡아주는 클린업 트리오의 파괴력이 ㅎㄷㄷㄷ하더군요.
어떤 공에도 배트를 대차게 돌리면서 맞혀 나가는 걸 보니, 자신들의 타격과 파워에 자신감도 있었고요.

수준 높은 야구를 봤으나, 광주시 교육청의 높은 분들까지 온 보람이 없이 무등중이 4 : 3으로 역전패.
좋은 투수력에 강력한 클린업, 탄탄한 기본기의 경주중이 4강에 진출했습니다.
설마 이런 학교들이 또 많이 있을 것 같진 않기에... 이 경기는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는 느낌입니다.

2008/06/02 04:17 2008/06/02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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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06/02 13:14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채니 2008/06/02 16:52

      전면드래프트로 갑니다. 1차지명은 사라지고요.
      무등중이 아마 작년에 문광부장관기에서 우승한 학교일 겁니다. 전력은 전국 최강급이고, 상당수가 광주일고로 진학하기 때문에 광주일고 전력의 밑거름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지역은 초중고 모두 강세인 편...
      (작년 문광부장관기는 1~3위를 광주쪽 중학교들이 휩쓸어갔죠)

      무등중이 투수력은 좀 달리는 것 같은데 야수들은 괜찮았습니다. 나무배트에의 적응을 고민해야겠지만 이 지역의 미래는 여전히 밝은 것 같습니다. ^^

  2. 비밀방문자 2008/06/02 20:0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채니 2008/06/04 16:23

      아, 그 글엔 일부러 댓글 막아뒀습니다. ㅎㅎㅎ
      저도 정치 이야기를 하는건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지금 촛불 문화제는 참가하지 못하고 있지만, 집안 대대로 다른 사람과의 정치 이야기에 끼어서 대미지를 입느니 투표 같이 실천으로 보여주는 편이고. 저도 그런 경향을 많이 물려받은 편이죠.

      사실 호남에게는 원하지 않더라도 씌워져있는 업보가 있어요. 그걸 뒤집어쓰고 가는게 이런 부분에선 의견을 내세울 필요도 없어서 편하긴 한데, 솔직히 대부분의 영역에선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 왜, 밖으로 나와보니 젊은 사람들도 전라도 사람들은 남 속이길 좋아하고 배신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더라고요.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어른들에게 보고 배운 걸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어쩌면 젊은 사람들이 더 무서웠어요. 그런 걸로 속상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이 많겠죠...

      사람이 우선이어야 할 부분에서 사람이 우선이 아닌건 원망스러워요. 아프간 사건 때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저것들한테는 돈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그것이고 지금 상황이 피를 불러야하는 상황처럼 되어가는 게 싫은 거에요. 지난 87년 6월도 피와 함께 시작되었던 것처럼.
      정말 피를 보지 않는 선에서 일이 잘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저부터 잘되어야 하는데 잡념만 많아지는게 쉽지 않습니다. 인터넷 끊기도 쉽지 않고. ㅎㅎ

      저도 소신이랄건 딱히 없어요. 비교적 입만 바른 편이죠. 그래서 반성도 많이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래도 소시민으로서의 삶도, 썩 나쁜 건 아니에요. 김수영 시인이 각광을 받는걸 보면요. (물론 그분과 저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ㅎㅎ)

  3. 박준완 2008/06/02 23:02

    어제 늦은게 토요일에 촛불문화제 참석했다가 오랫만에 만난 대학 선,후배들과 술한잔 마신게 과음이 되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문자연락 받고서 겨우 기상을 했다는...
    암튼 나때문에 더운날 고생많이 했는데...
    시원한거라도 사줘야 하는데...
    과음에 여파로 원체 제정신이 아니어서...ㅋㅋㅋ
    앞에 있는 글은 읽고 싶은데 너무 길어요...
    걍 시간이 허락할때 천천히 읽어 볼렵니다...

    • 채니 2008/06/04 16:26

      아휴, 가볍게 생각했는데 하루 정도 그 여파가 간 걸 생각하면 저도 이젠 네 경기 완투같은 건 함부로 하면 안되겠습니다.
      암튼 제 정신이 아니었던 건 저도 똑같죠, 뭐. ㅋㅋㅋ 관중이 많든 적든 그냥 지정석에 앉았어야 하는 것인데 바보같이 내야에서 활활 타들어가고 있었으니. ㅎㅎ
      그래도 경기는 재밌게 봤어요. 중학 경기의 새로운 묘미에 눈을 뜬 듯~

      그 긴 글은 안 보셔도 됩니다. 상당수는 이미 사석에서 말씀드린 건데요. ㅎㅎㅎ 저도 스크롤바 내리다가 움찔하는 글인데 읽으시느니, 나중에 오프에서 대화나 편하게 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요? 제가 술은 못해도.;;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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