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경기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채 함평을 찾아갔지만 일요일 경기는 토요일보다는 느슨했습니다.
10 : 2로 이기는 경기보다 3 : 3으로 비기는 경기가 재미가 없는 건 어쩔 수 없기도 하고, 크게 이긴 경기 다음 날의 어딘지 모르게 헐렁해지는 플레이 탓도 있기도 하지요. 기아 입장으로는 일요일에 나온 투수들이 토요일보다 별로이기도 했고요.
이날 라인업은 김경진의 1군 콜업으로 기아는 주전 우익수가 최재현으로 바뀐 정도였고, 삼성은 토요일 경기에서 크게 진 영향인지 내야 라인업이 상당히 바뀌었더라고요. 선발이 채태인-이여상-모상기-강현성으로, 전날과 비교하면 2루수와 3루수가 바뀌었습니다.
토요일에 확인하기로 채태인의 1루 수비도 잘하는 수준은 아니었고, 모상기의 3루 수비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만큼 수비 덕을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감대로 덕을 봤지요.
삼성 선발은 채형직, 기아 선발은 김진우.
기록만으로 보면 두 선수 모두 잘 던졌지만 실상 둘 다 제구가 춤을 추던 위기에서 상대 타자들의 난감한 선구안과 호쾌한 스윙의 덕을 많이 봤습니다. 김진우는 1회에 흔들리다 안정을 되찾았고 채형직은 1회엔 깔끔하다가 뒤로 갈수록 위기 관리 능력을 보였다는 차이는 있겠네요.
경기 당일까지만 해도 김진우의 2군 피칭이 고우석에 비교해서 나을 건 별로 없다고 화가 나 있었지만, 한잠 자고 일어나서 기록지를 복기해보니 썩어도 준치라고 경험많은 김진우가 고우석보다 못 던진 건 아니었어요. 구위는 요전의 난감했던 라이브 피칭 때에 비하면 좀더 올라왔고 제구도 그때에 비하면 나았습니다. 볼넷을 두 개 허용했으나 적어도 선구안만은 확실한 1군급인 양영동에게 허용한 것이었습니다. (2군에서 K/BB가 1이 안되는 타자는 흔치 않을테지요) 그리고 3.2이닝동안 삼진 여섯개였고요.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게 가끔은 스트라이크와 볼 차이가 확연하게 날 정도로 맥없는 공을 던졌고, 그때마다 포수 수비의 덕을 많이 봤다는 것입니다. 준수가 키가 작기는 하지만 준수가 아니라도 거의 점프를 해야할만큼 높이 공을 던지기도 했고 좋은 블로킹 동작을 요하는 원 바운드 공은 그보다 많았습니다. 그런 것까진 좋은데 공을 던지다가도 에이씨 하는 식으로 투덜거렸고 포수에게도 미트질을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것저것 주문을 하기도 했다는 게 솔직히 싫었습니다. 진지하고 상냥하게 말한다고 해도 말씨가 그렇게 들리지 않는 케이스가 있고(특히 진우는 얼굴부터 매우 그래 보이고-_-) 잘 던지려는 욕심 때문에 자기 안 좋은 공이 맘에 안 드는 것이겠지만, 어디 그 녀석에 대한 애증이 그걸 좋게 해석하게 만들던가요.
컴퓨터를 맘대로 못하게 되어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글을 쓰게된 것이 다행이네요. 어제라면 분명히 모든 행동에 화가 나서 퍼부어댔을 거니까.
암튼 6월 6일에 성질 더러운 두 선수가 손 맞잡고 1군에 올라가겠죠. 이로서 기아는 어떤 난투극에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농담이고;;, 패배에 찌들어버린 팀 분위기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을 성격의 선수들이 올라가는 게 다행이에요.
상대팀이긴 하지만 채형직에 이어 나온 김상수는 정말 좋았습니다.
프로에 들어와서 착실하게 성장을 하고 있는지 신일고 시절보다 구위도 많이 좋아졌고 제구도 이날 나온 투수 중에 단연 빛이 났습니다. 거의 모든 공이 스트라이크 존 근처에 형성되었고 타자들도 딱히 제대로 공략해내지 못했어요. 몇몇이 조금 깎다가 물러난 거 빼곤 비교적 투구수도 적었죠. 언젠간 삼성팬들이 기대하는 만큼 잘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다만 8회에 올라왔을 때의 모습은 아쉬웠습니다. 선두 타자 이강서에게 안타를 맞았는데 아무리 이강서가 수비로 먹고 사는 타자라지만 공을 좀 안일하게 던진 느낌이 있죠. 테이블세터로 나오긴 했지만 김준무가 타격이나 선구안이 되는 선수는 아닌데도 역시 손쉽게 기습 번트를 허용했습니다. 의도가 꽤 드러나는 기습 번트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3루수의 수비 실력 생각하면 그런걸 맞아준 건 별로 좋지 않았고, 기대했던 그분-_-의 번트 수비 에러까지 이어졌습니다. (원 히트 원 에러 상황) 결국 주자를 남겨놓은 채 마운드에서 내려가게 되죠. 이후 모상기의 에러가 하나 더 겹치며-_-;;; 남겨놓은 주자가 모두 들어와서 비자책 2실점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기대했다고 두번이나 에러를 해주니;;;;
손상정은 마운드에 올라가자마자 던진 연습구가 베이스에 오기도 전에 패대기되던 공;이라 긴장했는데 그거 하나만 이상했을 뿐, 비교적 깔끔하게 1.1이닝을 잘 던지고 내려갔습니다.
사실 이분 정도에 굴하면 다음 투수진은 절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_ㅠ 이범석-이윤학-곽정철이 줄줄이 올라왔거든요. 정철이의 제구가 메롱한 건 원래 예상했던 일이라 그렇다쳐도, 범석아. ㅠㅠㅠㅠ
마운드에서의 산만한 동작들이 개선되며 제구가 많이 잡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1군 막바지의 경험이 충격이 많이 컸나봐요. 제구도 좋지 않았고 구위도 딱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오히려 제구가 더 안 좋아지는 식이라 1.2이닝을 그럭저럭 버텨내는 것에도 야수들의 힘이 컸죠. 6회초 주자를 두 명 내보낸 상황에서 박정환이 번트를 댔는데, 그냥 평범한 번트가 되어 1사 2, 3루가 될 상황에서 허둥대다가 1루에 악송구를 뿌렸죠. 2루수 김주현이 공을 어떻게든 잡아내고 다이빙해서 1루를 커버하지 않았다면 아마 무사 만루가 되어버렸을 겁니다. (이 수비로 주현이가 근성 있다고 칭찬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훌륭했어요) 7회초에도 똑같았죠. 선두 타자 양영동을 볼넷으로 내보냈는데 아마 준수가 적절하게 도루를 저지하지 않았다면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이런 식이라면 범석이는 아무래도 당분간은 1군에서 보기 힘들 것 같아요. -_ㅠ
이윤학은 짧은 시간 동안 지나가버렸는데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올라오자마자 안타를 맞아서 마저 실점을 했으니 좋았다고 보기는 힘들고;; 정철이는 9회초 실점을 하는 과정에 운이 많이 없었죠. 2점을 따라가서 동점을 만든 상황에서 실점을 한 건 좋다고 보기 힘들지만 실점의 시작이 대타로 들어온 차민규의 바가지 안타였거든요. 절묘한 위치에 떨어지는 안타를 맞은 뒤, 양영동에게 안타를 맞아서 실점을 하게 되는데요. 차민규는 토요일에 보고도 별다른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일요일에 주루하는 걸 보니 정말 무지하게 발이 빠르더군요.;;;
어지간한 타자는 다 안타를 쳤지만 타자들 중에 딱히 기억에 남는 모습들은 없고요. -ㅅ-;
김정수나 박윤식이 일요일은 찬스에서 확실하게 못 살려준 게 아쉽습니다. (최재현이 잘라먹는 통에 애초에 찬스마저 없었다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각기 안타는 쳤지만 타선, 이라고 할만큼 유기적인 흐름이 없어서 심심하기도 했죠.
준무는 올려신은 양말 덕분인지 토, 일 모두 기대보다는 괜찮았어요. (사실 기대치가 워낙 낮아서;) 토요일에는 오 놀라워라 수준의 볼넷 두 개, 일요일에는 기습 번트 안타에 이어 9회말에도 찬스를 살려주는 1타점 안타였으니까. 수비할 때의 송구 동작을 지적받는 모습을 봤는데 열심히 해서 나아졌으면 좋겠네요.
똑같이 수비를 못한다고 해도(;) 준무는 열등반이라면 주현이는 우등반. 1루에 서계시는 정인교 코치님은 주현이는 공을 뒤로 넘겨도 칭찬을 해주시고 준무 나오면 말씀이 없어지시고.;;;; 준무는 송구 지적 받고, 주현이는 악송구 처리 잘했다고 칭찬 받고 말이지요. ㅎㅎ 앞으로는 둘다 열심히 잘해서 칭찬만 들었으면 좋겠네요.
재밌는 장면들이 여럿 있었는데 둘 정도만 적어보면.
5회말, 범석이가 아직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에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을 때였습니다. 던지려고 보니 불펜 쪽에 공이 없었나봐요. 범석이가 덕아웃 쪽을 보고 "현종아, 공 가져와. 새걸로~" 했는데 바로 얼마 후에 타석에서 열심히 방망이를 깎고 있던 최재현이 친 파울타구가 경기장 기둥에 맞고 범석이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현종이가 새 공 때문에 일부러 불펜까지 갈 필요가 이상한 이유로 없어졌고요.
3루 라인선상을 따라 있는 댐의 돌벽을 헤집고 다니며 버스기사 아저씨가 공을 줍고 계셨습니다. (2군에선 공을 모두 주워서 다시 써야해요;) 아저씨가 공을 다 줍고 터덜터덜 걸어 나가고 있는데 마침 타석에 있는 양영동이 눈치없이 방망이를 깎았습니다. 공의 궤적을 따라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시다가 돌벽을 타고 공이 흘러내리는 걸 보고 그대로 굳어졌습니다. 다시 주우러 가기 정말 싫으시겠지요. -ㅅ- 아저씨는 그 공을 포기하고 다시 걸어나가고 있는데 양영동이 또 눈치없이 파울 타구를 쳤습니다. 역시 뒤를 돌아보고 또 굳어져버린 아저씨. 함평에서 파울 타구 치는 건 상황부터 보고 합시다. ㅎㅎ;
또 이상하게 2군 경기가 길어진 탓에 1군 경기를 보려고 서두르고 있었는데 함평에서 나오는 길에 1회말에 떡실신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습니다.;;; 지인이 나주에서 내려주신 뒤 160번 버스 타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10 : 0으로 간신히 1회말이 끝났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힘이 쭉 빠지더라구요.
2군 경기도 딱히 재미없고 1군 경기는 더 그렇고. 암튼 정말 야구팬질하기 힘듭니다.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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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1군경기에서 오준형이 잘해줬고, 롯데와의 경기에서 장성호 선수가 타율이든 뭐든 성적을 바짝 끌어올렸다는데에 위안을 가져봅니다. 김희걸 로또-_-는 터지지 않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다만, 지난 일주일 동안 1승 5패 했다는 것은 압박스럽지만...-_-
이범석, 곽정철이 별로 좋지 못했나보네요~ 흠.
오준형 잘해주는 것만 기대하고 있었는데 묻힌 것 같습니다. 흑. -_ㅠ 저번 주 경기가 신인 하나가 패전처리로 괜찮은 모습 보인 걸로는 어떻게 안될 정도로 워낙 충격이 컸네요.
스나이퍼 2할 9푼대 진입은 진짜 기쁩니다. 정말 더 기대하는 거 없고 스나이퍼 기록만이라도 어떻게 잘 됐으면 해요.
곽정철은 원래 제구가 안 좋으니 사사구가 없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는데, 이범석이 문제였어요. 그래도 얼마전 내려갈 때만 해도 곧 올라오려니 했는데 얼굴 보려면 좀더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지요.
전 김진우 관련 기사를 보지 못하고 동대문에서 먼저 채니님 문자통해서 얘기듣고 나니 저녁에 집에가서 접할 기사가 어떨지 상상이 갔어요. 역시나 서감독 자의인지, 타의인지 양치고 계시더군요. 후훗~
범석이도 안좋군요. 듣자하니 영민이도 메롱이라던데... 이번에 내려간 정민이도 걱정입니다. ㅜ.ㅜ
하루 본 걸로 속단하긴 이르지만 범석이는 정말 그날 너무 안 좋아서요. ㅠㅠ
영민이도 시즌 초에 2군을 평정하고 올라오던 때만큼은 아닌 모양이에요. 강철옵이 든든히 버티고 계시겠지만 차정민까지도 다 걱정스럽습니다. -_ㅠ
제가 어지간하면 선수들더러 욕은 안하는데(기아 선수라면 더욱 그렇고!) 예외인 선수가 있습니다. -_- 당장 낼 선발이라는데 sk전에서 뭘 믿고? 라는 생각부터 드네요.
땜빵 선발도 없는 마당에 니놈이나 굴러라~라고 생각하기로 해요. ㅜ.ㅡ
그래봐야 줄창 폭투만 던지면 구르고 싶어도 구르지 못하겠지만 말이에요.
이 눔 자식, 5이닝 못채우면 알아서 해라. 바득바득~
5이닝 채우는 건 기본, 석민이 나오는 경기 아니면 투수들이 은근히 혹사 중이니 더 이상 먹어주는 건 당연합니다. ㅠㅠㅠ (쓰면서도 제 자신이 얼마나 웃긴지;;;)
어휴, 말씀대로 다른 젊은 투수들 가슴에 스크라치가 나느니 그 자식이 다 뒤집어 써야하는 거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