꿉꿉하다. 이보다 꿉꿉할 수는 없다.
즐겁고 발랄하고 가벼운 인생을 삶의 모토로 삼은지 어언 8년도 넘었는데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상 그런건 정녕 꿈일런가 보다.
심지어 글 쓰고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이틀 전의 엘지전까지 이해가 갈 정도의 이상한 경기가 펼쳐졌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제는 에서튼한테 떠넘길 수는 있었다.
그럼 어제는? 도대체 누구한테 떠넘길 수 있나.
왜 거기서 선수들이 어리다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자기 탓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것 같지 않아서 감독 코멘트를 보고 싶지 않았는데 틀림없더라.
이런 얘기 써도 되나 모르겠지만 오프라인에서 효훈이를 보면서 한 얘기가 있다.
오리털 파카를 입고도 얼어 죽을 것 같은 한겨울에 148을 던진 그 녀석을 보고도 우리끼리는 공끝이 안 좋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일부 한화 팬들이 그렇듯이 상군매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냥 한기주를 보면서 높아진 눈높이를 과시하고 싶었던 게지.
근데 솔직히 150 근처를 던진다는 것만으로도 탑 시드에 드는 유망주다. 특히 올해같이 준척도 보기 힘든 한숨 나오는 해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효훈이를 무시하려고 애를 써봤던 우리가 비웃기는 것이지. 그래서 올초에 겨우 팬인 주제에 너무 고급스러운 기준을 갖지 말자고 우스갯소리를 했던거다.
이런 얘기가 왜 이런데 나오냐고?
겨우 팬 주제에 성근 할배와 인식 할배가 혹사 문제로 얽힌다고, 재박횽은 인터뷰 하는 게 맘에 안 든다고 고급스러운 기준을 들이밀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성적으로 말한다. 이길 줄 아는 건 감독 최대의 자질인 건데 왜 다른데 쓸데없이 신경을 썼을까 싶은 후회가 들었다. 이길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그 세 사람은 할 거 다 하는 건데 다른 것에서 좀 문제가 있으면 어쩌랴. 신은 모든 걸 다 주지 않는다. 하나쯤 모자랄 수도 있지. 그러니까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뒷돈을 풀어서라도 잡았어야 했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작년 준플레이오프가 생각났다.
똑같은 것에 또 당하는 건 진짜 피곤하다.
클리어가 엔트리에서 대기 중인데 한기주를 올렸던 그 때나, 김재현이 엔트리에 대기 중인데 좌완 선발을 빼버렸던 어제나 다를 게 무언가.
징그럽다 징그러워. 이쯤 되면 학습효과가 없는 거다.
백번 양보해서 승리 투수 요건에서 아웃 카운트 하나 남겨두고 선발을 뺄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그전까지 패전처리로만 기용하던 선수를 갑자기 그런 상황에서 기용하는 의도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를 써봐도 이해가 안 갔다. 그러니까 팬들은 몰랐는데 승전조로 승진한 게 영민이만이 아니었던 것?
감독이 진민호와 이범석을 '망쳤다'고 해도 할 말 없을 것이다.
둘다 정신세계가 독특한 선수이니 아무렇지도 않게 딛고 일어나길 기대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대일 뿐.
사실은 최대한 감독을 믿고 싶었던 것 뿐인게다.
납득이 안 가는 건 산만큼 있었다.
차정민 미스테리가 그렇다. 2군 방어율 0점대이고 이닝당 투구수는 너무나 적다. (기아 2군 기록지는 퍽이나 자세하다) 그렇지만 전지훈련은 물론이거니와 1군에서 절대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작년부터 의혹이 제기 되었지만 올해는 그럴듯한 변명이 있었다. 아니, '경찰청 입대가 예정되었는데 그 쪽이 갑자기 붕 뜨면서 우리도 못 쓰고 있다'는 근거 빈약해 보이는 말을 최대한 믿어보려고 애를 썼다. 무려 KBO 규약집까지 뒤져가면서 차정민이 1군에서 뛸 수 없는 신분이라는 근거를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했을 정도이니.
그러나 김희걸, 이동현 둘이 던지고 있는 걸 보니 이젠 믿는 게 아니라 오기가 생기더라.
피안타율이 높은 건 알았지만 올해 김희걸 피안타율은 배팅볼 기계 수준이다. 5할이 넘는단다.
시범경기 때의 좋았던 모습은 어디로 가버리고 이동현은 130대로 구속을 낮추지 않으면 제구도 안된다. 그나마도 스트라이크존에 제대로 들어간다고 할 수 없을 정도.
이런 투수들이 1군에서 던지고 있는데 차정민이 안 올라오는 건 진짜 그 말도 안되는 변명을 안 믿고는 견딜 수 없는 오기가 생기도록 만들었다.
그저 시즌 중도 감독 경질만은 피하고 싶었다.
프런트야 아무렇지 않겠지만 3연속 감독 중도 교체는 너무나 데미지가 크다. 그렇게 팀이 막장 테크 트리를 타고 있는게 좋아보이겠는가. 게다가 누가 감독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앞도 보이지 않는 이 마당에.
고로 나는 오늘도 믿는다. 차정민은 진짜 신분이 묘하게 됐을 뿐이다. 그런 것이다.
그리고 감독이 한 경기를 말아먹었지만 살다보면 혼이 날아가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최대한 화를 삭여 보겠다.
다만.
김희걸, 이동현은 제발 눈 앞에서 치워 달라.
하다못해 걸쓰라도 그만 보고 싶다.
이젠 투수 보호를 위해서라도 한 달 정도는 안 봤으면 좋겠다. 기아 팬들이 걸쓰 나오면 뒷목부터 잡는 걸 안다면 더욱.
(차정민을 제외한) 올릴 만한 투수는 거의 10일 엔트리 규정에 묶여있으니 올릴 수 없다면, 2군 운용을 위해 남겨놨을 것이 분명한 다른 투수들이라도 괜찮다. 밸런스가 최근 흔들렸다는 준형이라도 지금의 피안타율 5할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가 패전 처리조차 제대로 못해서 영민이가 경기 시간 길어지는 걸 막으려고 나와야 할 정도라면 진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쓰지도 않을 한규식은 내리라고 하고 싶지만(심지어 대타 준비도 안 한다. 의자만 덥히다가 사라진다) 올릴 투수나 야수가 딱히 없으니 할 수 없고.
그저 당분간 김희걸만 안 보면 어린 투수들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서감독님의 2007 시즌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꼴아라도 좋다.
한번 한 거 두번은 못할까.
이런 경기를 현장에서 보고 왔더니 진짜 성적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유망주 보면서 자기 위로나 하지 뭐. 스나이퍼 3할 말고는 바라는 거 없다.
아, 진짜 선수고 코칭스탭이고 프런트고 거하게 까는 거 없이 욕질도 안하고 착하게 살고 싶었다.
야구가 도움을 안 주는구나. 에헤라.
*
3루 쪽에서 관전했는데 맨앞줄 슥흐 여빠들은 서감독과 함께 기름을 들이 부었다.
상대팀 팬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진짜 시도때도 없이 꺅꺅거리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외야로 공만 날아가면 그냥 꺅도 아닌 곡소리가 나오는데... 빈말 아니라 아이돌 좋아하는 교복 고딩들도 그러지 않는다. 이래뵈도 아이돌 씬 근처에서 10년을 구르고 있는 몸이라 잘 안다.
이 바닥에서 여자팬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 어지간하면 여자팬들은 안 까고 살고 싶은데, 곱게 화장하고 모두 미니스커트 입고 그중 하나는 긴머리 가발까지 착 쓰고 맨 앞줄에서 꺅꺅대는 그녀들은 진정으로 강적이었다. 미안하지만 다들 '정이 오빠'보다 나이들은 있어보이더군.
트랙백을 보내세요
트랙백 주소 :: http://nemobandt.com/yagu/trackback/512



댓글을 달아 주세요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일단 인터뷰 스킬이라면 그분과 비교해서 비슷하거나 떨어지는 분은 겨우 선감독 정도일 것 같습니다. ㅎㅎ;
코치 시절에 대해서 큰 호감은 없는 감독인데 누구나 약간의 어두운 점은 안고 있고 100% 성공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초보 감독이 그 정도로 해내고 있다는 건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반면... 진짜 범석이 얼굴은 눈 뜨고 볼 게 못 되더이다. 그 상황에서 얻어맞고 카운트 싸움 중에 강판되면 죄책감에다가 창피함에다가 제대로 못해냈다는 자괴감에 괴롭지 않겠습니까. 민호나 범석이나, 어휴.
저도 김봉근 코치님이 신화를 쓰고 있다는 건 믿지 않습니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스포츠 2.0에서도 칭송을 받고 모두가 좋아할 정도로 완벽한 코치라는 생각은 안든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일단 진민호-이범석으로 이어지는 그 날의 운용은 왠지 투수 코치가 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나름대로 선수들 파악은 잘 하고 계신 코치님 같은데 이범석-신용운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더 어이가 없었다는 것까지 생각해보면요. 적어도 투수 코치라면 카운트 싸움 중에 갑자기 투수를 내리는 일은 없었겠죠. 무슨 막장감독 병효씨도 아니고 말이죠.
이제 기대하는 게 있다면, 스나이퍼 3할에 오준형-양현종이 언제 1군에서도 통할만큼 구색을 갖춰서 올라올까 그거뿐입니다.
아 정말 맘이 쓰린 경기였어요.
일단, 처음 뵙겠습니다. ^^
금요일 경기도 정말 어이 없었고 일요일도 괴로웠죠. ㅠㅠㅠ 기아팬이라는 게 원죄처럼 느껴지니 참 쓰리네요.
세상일이 꼬이려면 별짓을 다해도 꼬이는 법이죠...
이기고 싶어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해요..
그러게요. 정말 이기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하려구요. -_-;
경기장에서는 심장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지난 일이니 좋게 좋게 생각해야죠. -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