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것도 포수 뒷좌석 쯤)에서 봐서 오바합니다. 자제하려고 노력은 하겠습니다만;
야구장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의 집에 그대로 기어들어가기가 그렇게도 싫었답니다.
알콜이 1mg만 들어가도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얼굴이 빨개지는데 기어이 한 모금 목도 축였습니다. 맥주가 시원하고 달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봅니다.
따지고 보면 머리는 텅 비어버린데다가 그냥 헛웃음이 피식피식 나오는 게 경기를 보고나서 소감의 전부가 되겠습니다만.
1차전에서 눈 뜨고 그대로 당한 서정환 감독이 김인식 감독에게 나름대로 반격을 한 경기입니다. 크로스 카운터 정도는 아니겠지만, 조경환 선수의 타순이 적중한 데다가 똑같이 만루작전을 유도해내서 성공을 했으니까. 이왕 밑그림 대범하게 그려서 성공하신 김에 앞으로는 조금 덜 소심한 운영을 해주셨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만 3차전 선발이 우리 상화씌라서. ㅎㅎㅎ;;;; (상화씌 관점으로 보면 웃을 일은 아닌데;;;)
진우 말고 또 하나의 에이스(사실은 올시즌 진짜 에이스) 그레이싱어의 눈부신 호투가 돋보였던 경기였습니다.
솔직히 싱하횽은 한화전 등판 기록이 안 좋습니다. 그치만 기아 물빠따 타선을 등에 업고도 무려 14승을 했다는 저력(그 중 절반 이상이 시즌 후반에 기록한 승)만큼은 인정을 받아야 할텐데 상대에게 조금도 위압감을 못 주는게 경기 직전까지 참 아쉬웠습니다. 하기야 자기 입으로 올림픽 이후 큰 경기 등판 경험이 없다고 했고 팔꿈치 통증이 있어 치열했던 페넌트 레이스 막판엔 등판마저 하지 못했으니, 나오는 것 자체가 만용이라 어렵지 않게 무너뜨리리라 생각하셨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이해가 안되는 생각들은 아닙니다.
다만 전 다른 것보다 믿고 있는 에이스들에 대한 자존심만큼은 센 편인데 너무 인정을 못 받으니 오기가 생겨서라도, '불펜이 무너지거나 기아 타자들이 점수를 못 뽑아줘서 지는 게 차라리 나아, 싱하횽만큼은 무조건 호투를 해야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ㅅ-;;;
그레이싱어의 컨디션이 좋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최근 들어 등판을 꾸준히 했던 투수가 아닌데다가 아프니까. 강속구로 윽박지르는 투수는 아니지만 1회부터도 140을 넘는 구속을 보이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던지는 공도 거의 체인지업이나 변화구가 아니었나 싶고 후반엔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였죠. 진우 때문에 한 맺혀서라도(-_-) 6회만큼은 채우길 바랐지만 그 타이밍에 내린건 나쁜 판단은 아니었어요. 마침 큼지막한 안타를 맞기도 했고요. 몸도 안 좋고 실전 감각도 많이 떨어져 있을테니 80개 정도에서 끊어주는 게 옳았던 것 같습니다. 선발만큼 불펜도 아껴주세요 ㅠㅠ
...기주 때문에 승리 투수 요건이 날아간 게 정말 아쉬웠어요.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만.
약삭 빠른 기주 녀석-_-; 진우도 못해본 가을 잔치 첫 승을 그런 식으로 가져가? ㅎㅎㅎ
바로 점수 차를 벌려서 편안하게 던진 것도 있겠습니다만, 피차 보크 건으로 미친듯이 까이는 것 때문에(-_-) 맘 상한 홈 팬들이 구름같이 모여있는 터라 김태균에게 동점타를 허용하고도 '괜찮아~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하고 감싸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어차피 기주 아니었으면 보너스도 못 탔을 거라는 거 다들 알고 있으니까 그 녀석만을 탓할 수도 없었구요. 그런 분위기가 녀석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린 투수라 한번의 흔들림이 선수 생활 끝까지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큰 경기에 약한 투수라는 이름, 끝까지 가면 좋지 않지요) 겨우 하루만에 전폭적인 애정을 등에 업고 홈 등판으로 극복해낸 걸 보면 한기주는 실력도 있지만 운도 상당히 따라주는 선수인 듯. 마음이 안정되니 이후엔 피칭 내용도 훌륭해지고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게 흐뭇했습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게 좋았어요. 직구가 좋으니 슬라이더는 조금 덜 훌륭하더라도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는 게 주효했구요. ^-^;;;
몰랐는데 기사 보고 알았습니다. 준플옵 최연소 승리 투수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 :D
올해는 홈에서 홈런을 치면 '왕건이 탐낸 쌀'을 한 포대씩 적립하여 복지 시설에 기증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펜스도 민 데다가 타자들이 그 타자들이라; 시즌 내내 '이제 몇 포 적립이야~ 받아도 고맙지도 않겠다', '몇 주만의 적립이에요?' 하고 농담따먹기를 했을 정도인데 기대도 안했던 올해 첫 만루홈런이 중요한 가을 잔치에 터져나왔습니다. 주인공은 현곤씌.
뒤에 쓰겠습니다만 류현진은 여러가지 이유로 동요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선발을 오래 두는게 좋긴 좋지만 가을 잔치의 어린 투수는 언제 어느 순간 어디로 튈 지 모르죠. 이런 경우 투수를 보호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내려서 크로스 카운터만은 막는다, 혹은 자기가 지키도록 해 자신감을 고취시킨다. 야구팬들의 인식 속에 김인식 감독 스타일은 후자 쪽일테고 그 순간 벤치가 선택한 작전도 후자였습니다.
아마 당시 관중석에서 파도를 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소리를 질러대면서도 파도의 흐름을 체크하고 경기장까지 주의깊게 보는 멀티태스킹은 저한텐 무리였습니다. 막 정신을 차려보니 좌익수가 넘어가는 타구를 더 쫓아가지 못하고 멀뚱히 쳐다보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밀어내기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나 하고 있던터라 뜬금없는 홈런에 더 정신이 나갔습니다. _-_
눈에선 눈물도 좀(아주 조금) 나왔고 웃다가 미친듯이 뛰다가 소리 지르다가; 뭐 그랬습니다. 저만 그랬겠어요 뭐.
1만여 관중이 한 목소리로 이현곤 연호하는 건 평생 귓전에서 울려퍼질 것 같습니다.
바뀐 투수가 올라와 연습구를 던지는 것, 혹은 심지어 경기장조차 이현곤에 비하면 엑스트라 1, 2였습니다. 영웅은 이현곤, 영웅을 사랑하는 히로인은 관중. 조명이 꺼진 무대는 앵콜을 하기 위해 올라오는 이현곤에게 예비된 자리. 결국 덕아웃에 들어갔던 그는 히로인을 위해 다시 한번 나와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피겨스케이팅처럼 꽃다발이 그라운드로 던져졌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 아쉬운대로 손을 흔드는 그에게 쏟아진 더한 갈채가 앞으로의 선수 생활 내내 따라다니길 바랍니다.
전설의 스타 한 분이 영웅을 또 하나 만들어내기 위해(..라기보단 '상대를 뒤흔들기 위해'가 정확하겠지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 불사했던 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5번은 암만 해도 몸에 맞지 않는 옷, 찬스마다 번번히 끊어먹던 종범성은 별 수 없는 테이블 세터 체질에 스타급 센스였습니다. 타자 한 명이 미쳐 상대팀 전체가 괴로움에 빠지게 만든 시작과 끝, 이라는 디씨 야갤 모 삼빠의 언젠가의 찬사는 헛된 것은 아니었구요.
안타로 나가 연속 도루로 3루타를 만드는 것도 봤고요. 단타가 될 법한 타구를 날려놓고 2루까지 뛰어서 세이프가 되는 것도 봤고요. 선두 타자 홈런은 못 봤지만(못 볼 수밖에 없다;;) 전성기의 화려한 플레이는 2006년 가을의 무등구장에 그대로 펼쳐졌습니다. 기억 속에나 혹은 낡디낡은 녹화 테이프에나 아련하게 남아있는 게 아니었어요.
이종범 아니면 할 수 없는 플레이는 어린 투수 류현진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런 거, 그보다 훨씬 경험많은 선수들도 충분히 동요할 만 하니까요. 거기다가 타이거즈 팬들에겐 이종범이 신앙입니다. 아무래도 금방 달아오르지 않는 지정석이나 3루 쪽의 미적지근한 관중들이 종범성의 재림을 보며 큰 소리로 응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견제구를 던지면 '아야~ 날샌다' 연발, 조금 시간을 끌면서 타이밍을 자기쪽으로 가져갈라치면 '우우~'. 초반엔 1루 쪽 일부 열성적인 관중만 적이었지만 등 뒤에서 받쳐주고 있는 팀 동료들도 묻혀버렸을 정도로 사방이 적입니다. 게다가 종범성은 리드 폭을 늘리고 있는 폼이 언제라도 뛸 것 같고. 그 녀석이 제구가 안되는 건 가끔이나마 볼 수 있지만 공을 못 던지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기아 타이거즈 유일의 희생 플라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타자 조경환의 선취점도, 이현곤의 만루홈런도 결국 종범성의 발끝에서 시작했습니다.
포스트 시즌 가면 운용이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정석인데 2차전에서 본 기아 타이거즈는 5할 본능부터 모든 것이 여전합디다. -ㅅ-;
몸 푸는 투수들을 지키고 서있는 진우는 니나노~ 놀다가 파울볼이 불펜으로 날아와도 적극적으로 막아서지 않고(-_-) 불펜의 어린 투수들은 마냥 즐겁고(그래, 마운드에 오를 리 없는 땡보직이다-_-) 용규는 못 치는 게 분해서 씩씩거리고 스나이퍼는 여전히 무념무상하니 해맑다는 식으로 다들 자기다웠습니다.
김포수 버스터같은 구태의연한 작전 내고 그대로 간파당하는 것까지 여전한 건 문제입니다만;;; 암튼 바짝 얼어있지 않아서 좋네요.
보고 싶은건 다 본 데다가 지긋지긋한 가을잔치 연패가 끊어져서 즐겁습니다.
이러다가 프로야구 25년사를 뒤엎는 기적이 일어나도 좋고 아니더라도 원하던대로 최선을 다했으니 좋고.
헤실헤실 웃으며 아름다운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트랙백을 보내세요
트랙백 주소 :: http://nemobandt.com/yagu/trackback/405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기다리던 글이 올라왔군요.ㅎ
일요일날 아쉽게 지고 경기장을 나오면서, 그래 어찌보면 우리한텐 보너스 경기였어.. 너무 우울해 하지 말자. 라 생각했었는데...
오늘 경기를 보고나서는 그래도 타이거즈의 승리를 너무나 보고 싶었고 너무나 기다려왔다는 걸 깨달았네요...^^;
호랑이네 가을시즌 연패를 끊으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어제 경기를 티비로 보고있자니 재작년 가을 광주구장에서 맞았던 (곰팬에게만^^;;) 아름다운 밤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부럽기도 하고 덩달아 기쁘기도 하였답니다.
인생이 돌고 돌듯이 승부도 돌고도는 것.
우선은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 즐기시고..
..더불어 내일도 아름다운 밤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지는 경기는 메모리에서 삭제하는 능력은 탁월한 저로서는 2차전까지만 생각납니다.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지 3차전을 연기시켜둘 뿐이죠. ㅎㅎㅎ